"마,은안"
…그는 다른 손으로 여자의 허리를 단단히 감쌌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롭게 귀를 파고드는 목소리로 속삭인다. 네가 불러달라고 했잖아.
…두렵지 않다,고 했지?
- 10기 연흘적왕(with 산리소원) 글 中
*
1.
서가 틈새로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늘 아주 활짝 웃는다. 웃으면 눈꼬리가 감기며 휙 휘어진다. 모든 여자가 그렇게 웃지는 않는다. 이한은 입은 미소짓고 있으면서 눈은 웃지 않는, 그런 여자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그들의 눈은 정확하게 앞을 노려보고, 탐욕한다.
그래서 처음엔 그녀가 순진하고 물정모르는 아가씨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순진했다. 사전적 정의와는 좀 다른 느낌으로.
언제나 먼저 다가오는 것은 그녀 쪽이다.
"책 빌리러 왔어요?"
"귀찮게 하지마. 나 바빠."
이한은 그녀를 보자마자 무썰듯 단칼에 그렇게 말한다. 이한으로서는 그녀에 대한 수어번의 경험 끝에 나온 반응인데, 그런 그와 달리 그녀는 도통 학습이란 걸 모르는 성격이다.
"치."
그녀는 호기심 많은 고양이다. 두려움을 모르고 선을 넘었다가, 맹수의 사나운 앞발에 목덜미가 채인다.
우스운 것은, 그곳에 위험한 맹수가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한 후에도 그녀는 다가오는 걸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더욱 거리낌없이 선을 넘나든다.
"나도 책 빌리러 온거거든요? 아, 여기 있네."
이한은 그녀가 거짓말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녀가 하필 이한이 책을 고르러 서 있는 서가에 볼 일이 있을리 없다. 그것도 이한의 바로 등 뒤에 있는 책이 필요할 리는 더더욱이─
아앗.
이한과 바짝 마주선 채로 ─ 이한은 미처 비켜서줄 틈도 없었다. ─ 아슬아슬하게 까치발을 하며 책 끝에 손가락을 걸던 은안은 결국 그대로 중심이 무너지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한이 그의 몸 위로 엎어지려는 은안의 허리를 가까스로 잡았다.
너, 정말.
이한은 혀를 짧게 찼다. 하지만 그녀를 힐난하기에는 너무‥
너무, 두 사람의 숨결이 가까웠다. 은안은 이한의 팔 위로 무너진 몸을 바로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한도 그런 그녀를 굳이 밀쳐내지 않았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은안이 마침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흰 블라우스와 검정 물방울 무늬 치마, 그 아래로 검은 스타킹을 신은 쭉 뻗은 다리.
은안은 그의 눈이 그녀를 훑어내리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미처 의식할 새도 없이, 그녀의 입술이 그의 입술에 스쳤다. 재빠르게 닿았다가 쪽하고 떨어진다.
이한이 인상을 찌푸리며 어이없단 듯이 말했다.
"미쳤냐. 여기 아직 사람 있어."
하지만 먼지 두텁게 쌓인 고서가 쪽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굳이 찾아올 사람도 별로 없어 보였다. 이한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결국 피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수업 다 끝났어?"
시간은 오후 8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왠만해선 그 때쯤이면 모든 수업이 마친 후라는 것을 알만하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렇게 물었다.
수업 끝났어?
그것이 저녁이든, 오후든, 점심 전이든, 후이든, 늦은 밤이던지 간에.
그가 궁금한 것은 마은안이 수업을 마쳤는지 아닌지가 아니라 그녀의 대답이다.
그녀는 대답한다.
- 끝났어요.
가끔은 묘한 치기를 부리기도 한다.
- 아직,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 곧 끝나요.
"마, 은안."
먼지냄새와 오래되어 눅은 종이 냄새가 퀘퀘한 서가에 몸을 기대고 이한이 다시 물었다.
"수업 끝났어?"
은안은 고개를 약간 치켜 든채로 말했다.
"방금 전에요."
그리고 이한은 가만히 바라본다. 무슨 놀이를 하는 것 같다. 이한은 홱 돌아서며 말했다.
같이 내려가자.
2.
이한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준철을 소개받은 건 사실같았지만 그녀가 정말로 준철과 끝까지 정식으로 잘 해볼 마음을 갖는다던가, 아니면 준철이 정말로 그녀에게 넘어간다던가 하는 일 들중에 하나는, 일어나지 않겠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일은 그녀가 선언한대로 되어갔다. 이한이 간과한 것은, 마은안이 이한에게 어필하는 여자였다면, 준철에게 역시 그러하리란 사실이었다. 이한조차도, 그녀가 예쁘거나 사랑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런 관계를 갖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꽤 오랫동안. 그리고 그 날 그녀는 어느 때보다 진심이었던 것이다.
입단속 해요, 친구 상처입히기 싫으면.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쪽, 어느 것이 더 준철을 상처입히게 될지 그는 알 수 없다. 더더군다나 그는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는 일에 약하다. 그녀와 그 중에 누가 더 비밀을 지키는데 능할지도 미지수였다.
어느 오후, 이한은 이야기로만 듣던 준철과 은안 커플을 도서관에서 마주쳤다. 개방 열람실에서 앉을 자리를 찾다가, 비는 자리가 보여 다가 갔더니 준철이 있었던 것이다. 둘은 나란히 앉아, 책상 위에 태연하게 두 손이 포개져 있었다.
"어? 이한."
준철이 손을 흔들었다. 이한은 인사를 하며 준철을 한 번 봤다가, 은안을 본다. 은안은 입을 다문채 빙긋이 미소짓고, 또랑또랑하게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 여자친구, 마은안. 내 친구, 해이한."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눈꼬리가 접히며 초생달처럼 휘어진다.
이한이 두 사람의 맞은 편에 앉아 책을 펼칠 때까지, 은안은 계속 그 곱게 접힌 눈으로 이한을 바라보았다. 준철은 다시 책에 집중하느라 낌새를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이한은 고개를 숙이고 무시하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 고개를 똑바로 들어 그녀를 보았다. 웃고 있는 눈이, 이한을 바라보는 그 눈이, 탐욕스러웠다.
이한에게 무언가를 달라고 조르는 눈이 아니다.
그녀는 준철의 옆에 있다.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 옆에.
하지만 바라는 눈이다. 계속해서, 그치지 않고.
사실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오빠 좋아해서, 곁에 있고 싶어한거.
물론 몰랐겠죠. 관심도 없었을테니까.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그 눈길이 어떤 의미인지. 그저 모른척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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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더 쓰면 산으로 갈까봐 여기서 멈춤....은안아 준처리랑 행복해 ☆
2. 이것이 도서관 망상의 실체입니다. 근데 준철이랑 도서관 데이트하는 은안이라니 망상이 두배로 늘었따 ㅎㅎ
3. 역시 개강으로 바쁘실 모난님께 바칩니다. 그 와중에도 생일 망상을 두 개나 쪄주심 꺄 ..사실 함구할 줄 모르는 제 드립에 우리 모난당 손 떨리면 안 되서;; 그래서 얼른 찜 ㅋㅋㅋ 퀄리티가 보장이 안됨. ...어차피 현물은...
4. 이거 찌려고 관악글 다시 봤는데 생각보다... 더..... 전 관악 게시판에선 꽁냥거리기만 한 줄 알았더니 더 죄가 깊었더라고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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