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전/연록흔

망상은 생각날 때 썰어야 제 맛 2

Sonali 2013. 3. 3. 17:33

 

 

 

■ 목련우여랑'23|사마란ㆍ혜주

허 연 (언덕 墟, 넘칠 衍)

 

 

 

 

1. 생활비는 스스로 법니다.

 

 

"이거 정말 대단하군!"

 

능원의 공자는 감탄을 숨기지 않으며 책장을 차르륵 넘겼다. 능원에서 공부하는 경서를 베낀 서책은 토씨 하나 틀린데 없었고 심지어 문단과 줄맞춤도 정확하게 원본과 똑같았다. 게다가 귀퉁이에 깨알같은 붉은 글씨로 능원 교수의 말을 옮겨적은 필기와 밑줄까지.

 

"잘 못 된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붓을 챙겨 넣은 여자는 뜨거운 수건으로 피곤해진 손을 매만지듯 닦으며 말했다. 그치지 않고 터지는 공자들의 감탄사와 침이 마르는 칭찬에도 그녀는 표정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아마 없겠지만."

"이런 실력을 가지고 왜 여태 관복을 입지 않은거지?"

 

그녀가 막 소지품을 챙겨 자리를 뜨려는데, 능원의 공자가 그렇게 말했다. 혼잣말이었지만, 은근히 그녀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는 듯이 슬쩍 눈짓한다. 여자는 이 일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능원의 생도들을 만났다. 청운의 꿈을 가지고 학업에 정진하는 그들의 최고 목표는 국시였다. 국시…관직…공무…관복.

 

그 단어를 듣는 순간, 그녀의 앞에는 비릿한 냄새가 확 끼친다. 냄새는 기억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붉게 물들던 흉배, 떨리던 어깨, 무릎 꿇으며 돌아보던 눈동자에 비치던 것은…….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불편해지려는 표정을 애써 숨겼다.

 

"또 필요하신게 있으시면, 여기로."

다시 예의 공손하고 사무적인 얼굴로 돌아와서, 품 안에서 조그만 명함 한 장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목련우여랑, 허 연.

필사본 제작, 대필도 담당.

 

 

 

2. 우희당 학비는 숙부가.

 

 

"왔구나."

 

형군에 몸 담고 있는 숙부는 가끔 사람을 보내 우희당에 있는 연을 불러 왔다. 이번에 그녀가 그녀가 불려 온 곳은 서책방이었다. 그녀도 자주 오는 곳이다. 책을 구입하기 위해서나, 일거리를 받기 위해서. 들어선 책방은 평소와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책을 구경하는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관청에서 나온 듯한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숨 막히는 공기. 연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여 숙부에게 인사하고,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녀는 숙부가 배신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제 서책방에 들렸다고 했었지."

"네. 오전에."

 

숙부는 연을 안으로 좀 더 들어오게 했다. 서책방은 이미 무관들이 출입을 봉쇄하고 있었다. 그는 연에게 내부를 둘러보도록 하며 말했다.

 

"오늘 아침에 책방 주인이 죽은 채로 발견 되었다."

"어제와 비교하여 무언가 이상한 점이 없느냐?"

 

연은 입을 꼭 다물고 찬찬히 눈길을 움직였다. 눈동자를 굴리며 서방의 구석구석을 훑은 그녀가 숙부를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남 쪽의 벽돌에 이상한 균열이 있어요."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음전하게 내리깐 눈에는 숙부의 얼굴 대신 무관의 휘장을 수 놓은 관복 자락이 보인다.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이 흔들린다. 아찔하다.

그 때, 무릎 꿇고 사그라들던 두 형상. 냄새도 손짓도 멀리서 푸드덕 날던 새의 날갯짓까지 또렷이 기억한다. 그 옆에 서 있던 것은 그녀와… 그 사람이었다.

 

"벽은 조사해보셨나요?"

 

그녀는 숙부가 배신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숙부는 그녀의 말에 더 토 달지 않고 즉각 부관을 시켜 벽을 뜯어내라고 지시했다. 그녀의 말대로, 남향의 벽, 정확히 그녀가 지적한 부분의 벽돌은 힘을 줄 것도 없이 쉽게 빠졌다. 그 안에 교묘하게 숨겨진 비밀 금고가 있었다.

 

서책방을 조사하던 모든 인원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자신이 옳았다는 것까지 확인한 직후 연은 조용히 인사하고 더 지체할 것 없이 그 곳을 빠져나왔다.

서책방 문턱을 넘어 나가는 연의 등 뒤에 대고 형군 사람이 연의 숙부에게 물었다.

 

"대단한걸. 우리 부에 데리고 오면 좋겠는데, 국시는 통과했나?"

숙부는 연의 뒷 모습을 말없이 눈으로 쫒다가,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우희당에 들어가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어느 날 연이 말했다. 어려서 숙부에게 일신을 의탁한 이후로, 그녀가 그에게 그토록 뚜렷이 무엇인가를 부탁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여랑이 되기로 결정한 것은 숙부의 집을 떠나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선 그녀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따름이었는데, 모두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능원은…. 능원에 들어가서 관복을 입는다니, 그런…그녀는….

 

숙부는 일언반구없이 윤가해주었다. 우희당의 비싼 학비는 그 덕분에 감당할 수 있었다.

숙부는 알고 있을까?

그녀가…….   

 

 

 

3. 별호는 목련.

 

그녀를 처음 목련이라고 부른 것은 그녀의 아버지였다.

목련,

목련아….

따뜻하게 부서져 내려앉는 목소리.

 

목련이란 별호를 들은 사람들은 그로부터 희고 청순한 분위기를 읽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소저에게 잘 어울려요.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

아버지가 그녀를 '목련'이라고 불렀을 때 그것은 자목련紫木蓮이었다는 것을.

 

샛붉게 번지던 풍경….

하지만 그녀는 지금 아무 것도 묻히지 않았다.

그녀는 깨끗하게 빈 흰 색이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다.

 

 

 

 

 

 

 

 

 

   

....

* 너무_많은_것을_기억하는_여자.

* 장미님 티스에서 11기 망상보고 드립 아닌 드립을 친 직후 차 타고 가면서 망상한거. 까먹기 전에 풀어씀. 장미님 양해...ㄳ

* 만일 하게 된다면...설정, 배경 다 있는데 성격이 없다. 송영인을 해본 결과 이런 상황은 글쓰기가 매우 어렵다. ^^;

* 목련 좋아! 있는 곳에는 벌써 목련이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