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그는 북악에 갔는가, 가지 않았는가. 2
해이한은 그 날 북악에 갔는가, 가지 않았는가.
written by sonali
* 장미님 티스 운연톡6 <아수 여자는 아수 남자랑>에 얹어가는 망상입니다.
<안 갔다 1>
이한은 혜익에게 가볼 곳이 있다고 서둘러 인사하고, 바로 성큼 성큼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도서관 계단을 막 내려가려는 순간, 어깨에 물이 한방울 툭 떨어진다 싶더니 갑자기 쏴 비가 내렸다. 해 다 저물어서 갑자기 무슨 소나기람. 우산도 없는데. 이한은 얼굴을 찌푸렸다. 주차장까지만 가면 차를 타면 되니까 괜찮았지만 거기까지 뛰어가는 동안 옷이 젖을 것이다.
감수하고 히터로 말리면서 가야하나 생각하는데, 무언가 뾰족한 것이 그의 팔을 푹 찌르더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몇방울 얼굴로 튀어올랐다.
뭐야?
그가 눈을 찡그리며 옆을 돌아보았다. 제법 큰 우산을 펼쳐든 여자가 이 쪽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를 찌른 것은 그 여자의 우산인 모양이었다.
"어머 죄송해요!"
이한은 말 하지 않고, 비오는 길로 나서기도 전에 물 얼룩이 튄 어깨를 신경질적으로 털었다. 여자는 우물쭈물하더니, 이한을 아래 위로 훑어보고는 불쑥 말했다.
"대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씌워드릴까요?!"
그리곤 우산을 슥 내밀어서, 이한은 다시 우산 모서리에 찔리지 않기 위해 몸을 조금 뒤로 빼야했다. 여자는 다시 아차차,하는 표정이 되어 혀를 쏙 내민다. 평범하지만 그럭저럭 생긴 얼굴에, 애교가 흐른다. 웃으면 얼굴에 보조개가 깊게 패는, 사랑스러움으로 승부하는 아이돌같은 타입이다.
"그럼, 학교 지하 주차장있는데까지만."
그렇게 말하며 이한은 여자가 내민 우산을 받아들었다. 여자보다 키가 큰 이한이 우산을 받혀들고, 그녀와 나란히 걸어 도서관을 빠져나와 중문 쪽으로 걸어나갔다.
여자는 붙임성 있느 성격에 좀 수다스러운 편이었다. 처음 보는 이한에게도 거리낌 없이 비가 이렇게 갑자기 오다니 사물함에 우산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둥, 저는 공부하기 싫어서 인강 접고 땡땡이 쳤는데 그 쪽도? 하고 꺄르르 웃거나, 그래도 비가 오니까 학교가 좀 다르게 보이지 않아요. 정취있게~ 하는 실없는 소리같은 것도 흘렸다. 이한은 대답을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하고 적당히 장단을 맞추며 걸었다. 어차피 주차장까지만 가면 헤어지고 더 안 볼 사인데 ─ 그건 이한의 마음이 초조한 탓도 있었다.
하지만 굵은 빗줄기가 계속 내렸고, 우산은 어떻게 썼지만 이한은 우산 바깥으로 나온 자신의 한 쪽 어깨가 푹 젖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계속 비가 내리면 드라이브도 취소하고 그만 돌아가지 않았을까?
지하주차장 입구에 다달았을 때쯤, 그는 아까와는 생각이 좀 달라져 있었다.
해이한 이 새끼야, 가서 니가 뭘 할건데. 아니, 니가 거긴 왜 가냐? 일이 어떻게 되든간에…
차가운 비가 머리를 좀 식혀준 탓인지도 모른다.
"저, 미안한데."
이한은 여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
여전히 혼자서 재잘대는 중이던 여자가 말을 뚝 멈추고 이한을 쳐다보았다.
"주차장 말고, 좀 더 내려가서 동아리실 있는데까지 같이 가 줄 수 있을까요?"
그냥 동방에나 가서, 동아리 모임 시간까지 읽던 책이나 마저 읽어야 겠다.
여자는 어렵지 않다는 듯이 웃으며 오케이했다.
"저는 어차피 정문까지 갈거니까요~"
둘은 주차장을 지나 계속 걸었다. 이번에는 이한도 좀 여유를 되찾고 여자의 말을 넉살 좋게 받아넘기기도 했다. 여전히 크게 집중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학생 회관 건물을 지나가는데, 등 뒤에서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야, 홍!!"
이한은 모르고 그냥 지나쳐갈 뻔 했는데, 여자가 발을 우뚝 멈췄다. 우산을 들고 가던 이한도 뒤늦게 멈춰섰다. 홍,이 여자의 이름이었던건지 그녀는 뒤돌아보더니 크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소이야!"
"너 우리 주점 안 와?!"
"아, 맞다. 너네 과 오늘 주점한댔지~ 아, 벌써 과 주점 철이네. 근데 너네 비오는데 괜찮아?"
"우리 일기 예보에 비 소식 있어서 지하로 자리 옮겼잖아. 괜찮아. 지금 사람도 점점 많이 오고 있어."
"헤에~"
홍이라고 불린 우산 주인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이한은 계속 이렇게 우산을 떠받히고 서 있어야 되나 고민하는데, 갑자기 여자가 슥 머리를 돌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건 정확히 그녀의 친구가 이렇게 말한 직후였다.
"얼른 와, 파전 엄청 맛있어."
이한은 올려다 보는 여자의 눈동자가 왠지 반짝거린다고 생각했다.
"저기, 시간있으세요?"
"네?"
"시간 있으시면, 잠깐 들어가서 파전 드시고 가실래요? 제가 쏠게요!"
"하…?"
"어, 음. 왠지 모르겠지만, 같이 파전 먹자고 해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같이 먹고가요, 비오는 날엔 파전!"
그녀는 활짝 웃더니 급기야 이한의 옷소매를 덥썩 잡았다.
이한은 얼떨떨했지만, 어차피 도서관은 나왔고, 희재 일은 마음을 접었고, 동아리 모임까지 시간은 뜨고, 그녀 말대로 비오는 날엔 파전……
뭐, 나쁘진 않았으니까.
피식 웃으며 그녀와 함께 우산을 접고 회관으로 들어갔다.
-
지하 강당을 빌려 간이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한 주점 안으로 들어가자 더운 기운이 훅 끼쳤다. 과연 사람들이 조금씩 와글거리는 시점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자기소개를 안했네."
자리를 안내 받아서, 물과 나무젓가락이 놓이자 맞붙은 젓가락 두개를 짝 떼며 여자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가방을 뒤적 뒤적.
"난데 없이 만나서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저 수상한 사람 아니예요. 아수대 무역학과 2학년, 낙리 소위예. 자, 여기."
상 위에 올려놓는 반듯한 네모제비 명함은 아수대 학보사 것이다. 학보사 정기자 낙리 소위예, 라고 반듯한 굴림체로 새겨져 있었다. 이한은 예의상 그것을 받아넣었다.
그는 그만 잠자코 있으려다가, 여자가 무언가 기다리는 눈짓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는 것을 알아차리곤 목을 한 번 큼 뱉았다.
"경영학과 해이한입니다. 명함은 없어요."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소위예는 다시 활짝 웃었다.
학생 웨이터가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그녀는 시원스럽게 파전을 주문하고, 잠시 망설이더니 막걸리도 같이 주문했다.
"파전에 막걸리가 빠지면 섭하잖아요."
짧게 헤헤거린다.
"옳으신 말씀."
이한은 망설이지 않고 수긍했다.
대보름날 달같은 파전이 나오자, 여자의 얼굴은 환해졌다. 정말 파전을 좋아하나보다. 잘 먹겠습니다, 하고 달려든 그녀와 달리, 이한은 처음 몇 젓가락 이후로 흥미를 잃은 얼굴이 되었다. 파도 충분히 넣지 않고, 밀가루만 팍팍 쓴데다가, 과 주점의 부침개는 처음 몇 판 이후엔 파가 모자라서 학교 앞 잔디를 뜯어다 넣는다는 소문도 있는데, 어쩐지 입안에서 씹히는 파가 퍽퍽한 느낌이다. 대놓고 까탈을 부리는 일은 없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입 까다로운 도련님인 그는 미간을 모았다.
"그거 아세요?"
하지만 신난 낙리 소위예 - 그나저나 이상한 이름이다. 그럼 아까의 홍-은 뭐지? ─ 는 그런 그의 기색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비오는 날의 여심 공략은 뭐니뭐니해도 파전이죠!"
그녀는 꽤 자신있게 외쳤는데,
이한은 무슨 말인지 몰라서 짙은 눈만 깜빡깜빡했다.
-
* 이채님 망상 능욕 … 꺄☆ 낙리 소위예, 무역학과. 장래희망은 대기업인☆ ㅋㅋㅋㅋㅋ 이라는 제 망상속 설정. 언제나 능욕 죄송합니다 미사미사 (^ ㅠ)
*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파전 사랑은 계속 되는 걸로! 호호.
* 소위예 학보사 기자 드립은 또 하는 망상이 있어서 넣은건데....안 쓰면 사장 되는걸로 ^^;
* <안 간다> 편에 대하여 1 : 저는 이한과 희재 사이가 지지부진할 때 생각합니다. 이러는 동안 이한 새기는 몇몇의 여자와 썸을 타거나, 만나거나, 사귀거나 하고 있었겠지? *.* ;;...다시 태어나도 해이한은 ㄳㄲ고...클럽 죽돌이고...여자는 많고...
* 근데 현물에 왔는데도 망상에서 황모 냄새 난다 킁킁! ㅋㅋ 그냥 넘어가욬ㅋㅋ
<안간다 2>
차 키 절그럭대는 소리가 계속 되자, 혜익이 약간 웃음 섞인 목소리로 한 쪽 입꼬리를 치켜 올리며 말했다. 야, 너 뭐-하냐? 이한은 혜익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가볼데가 있어서요, 이따가 뵈죠, 하고 뛰듯이 도서관 문 밖으로 나섰다.
이한은 학교 호숫가를 가로질러 주차장을 향해갔다. 물빛이 그다지 맑다고는 할 수 없는 호수는 아수대의 랜드 마크 중에 하나로, 창립자 중 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반리 호수>라고 부른다.
아무튼 이한이 그 호수 가장자리를 둘러서 가는데, 갑자기 모퉁이를 돌며 무언가와 쿵 하고 부딪쳤다. 충돌에는 그의 잘못도 어느정도 있었다. 마음이 급한 나머지 목을 빼고 눈은 벌써 걸음 앞이 아니라 주차장 입구로 향해 있었던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너무 무방비한 상태에서 세게 부딪쳐서, 건장한 체격의 남자인 이한 조차도 한 두걸음 비틀 거리며 뒤로 물러설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부딪친 여자가 비명처럼 소리를 지른 것과 동시에, 이한은 가슴과 배 위로 무언가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부딪치면서 여자가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쏟은 것이다. 그의 엷은 색 셔츠에 갈색 얼룩이 딱봐도 두드러지게 남았다.
"정말 죄송해요."
여자는 부산스럽게 가방을 뒤져 휴지를 꺼냈지만, 이미 역부족이었다. 이한은 맥이 탁 풀려 한숨을 쉬었다. 이대로 희재랑 그 훤칠한 놈 있는데를 어떻게 가나.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간다고 하면 너무 늦을게 뻔하다.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하기도 했다.
"제가 세탁비를…"
"괜찮아요."
이한이 여자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딱 잘라 대꾸했다. 귀찮아서, 그는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동아리 모임에 얼추 시간이 맞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여자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치뜰 때까지 이한은 눈치채지 못했다.
"이한, 선배?"
이한은 그제야 여자와 눈을 마주쳤다.
"이한 선배였구나…! 아…!"
이한은 왠지 말문이 막힌 듯한 여학생을 내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샐긋하게 접히는 눈동자가 꽤 귀염상이고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누군지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미안한데, 누…"
"저 마은안이예요! 경영대 2학년 과대!"
이한이 여전히 잘 모르겠는 표정을 짓자, 여자애의 얼굴에서 한 풀 기가 꺾인 표정이 떠오른다.
"학생 회의 때… 한 번 뵀는데."
"아, 그렇구나. 미안, 사람 이름 잘 기억 못해서."
은안은 우물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귀 끝이 좀 빨개진 것도 같다고, 이한은 생각했다.
아니예요… 근데, 옷은 죄송해서…
괜찮아.
이한은 무심하게 대꾸하며, 시선은 그녀를 떠나 다른데 안착했다.
그가 갑자기 허리를 숙였다.
"이거, 네 건가?"
귀여운 보호 덮개가 달린 핸드폰이다. 부딪칠 때 떨어진 모양이다.
"아, 네!!"
은안이 양 손으로 냉큼 받아들었다. 좀 칠칠맞은 성격인 모양이다. 이런 애가 학년 과대라니, 괜찮은건가. 이한은 속으로 고개를 한 번 갸웃 했다.
"마은안,이라고 했지."
"네!"
은안이 핸드폰을 쥔 손을 꽉 비틀어 짜는 듯한 동작을 했다. 이한은 딱히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기억할게."
"…네에?"
은안의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도 모르고, 이한은 무심하게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푹 찌르듯이 가르킨다.
"이 옷."
"아…"
"담에 보면 커피사. 그럼, 이만."
안녕히 가세요! 등 뒤로 인사하는 마은안에게 손을 한 번 팔랑 흔들고, 이한은 계단을 따라 정문을 향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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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 산리 능욕! 예고 따윈 업다! 음하하! 은안의 설정은, 소조님 글에서 따왔습니다. 경영대 친한 동기같길래, ㅎㅎ 과대인 걸로! 역시 과대인 해이한과는 학생 회의에서 마주한 걸로 ㅎㅎ! ㅎㅎ 산니 사랑해요 ♡
* 반리 호수에 나도 모르게 울 학교 호수 묘사 넣으려는 걸 겨우 참았어요 ... 휴...
* <안간다> 편에 대하여 2 : <간다>와 <안간다>의 멀티 엔딩입니다. 마치 선택지에 따라 엔딩이 바뀌는... 미연시같다! 해이한과 자경궁 여자들로 미연시 시나리오 짜도 재밌을 듯! ...이라고 말하면 내가 너무 덕후 같겠지...후...
망상은 망상일 뿐 !
휴..전 이거 좀 아닌 거 같아요 ㅋㅋㅋ 그냥 본업 망상이나 ㄱ! 답글이나 ㄱ!
근데 아직 찌고 싶은 망상은 머리에 남았긔 ㅎㅎ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