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단히 깍지 낀 손이 가벼워진다고 느낀 건 어느 순간이었다.
왕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보았다. 맞잡은 손을 따라 어깨 선이 무너지듯 기울어지고, 그 옆으로 고개가 간간히 달랑거렸다. 숨을 한 번 쉬듯 미소 지은 그가 힘이 풀린 손가락 사이에서 어렵지 않게 자기 손을 빼내고 일어섰다. 걸음이 천천히 책상을 돌아 나간다.
여자는 그 어느 날처럼 담쑥 그의 품에 안겼다. 어린 묘목처럼 가느다란 안시의 몸에선 달콤하고 싱그런 향이 났다. 마치 딸기향같은.
그가 문 앞까지 몇 발자국 떼는데 안시가 부스스 눈을 떴다. 선잠이 들었었을 뿐인지, 아직 자신이 어디 있는지 몰라 비몽사몽해가며 눈을 부빈다. 왕야……?
“다행이다.”
고개를 숙이자 가느다란 모발이 간질거린다.
“어떻게 깨워야하나 고민했는데.”
책상에 마주 앉아 서책을 읽다가 잠든 안시를 그는 처음부터 깨워 나갈 생각이었다. 그녀는 일어나야 했다. 왜냐면. 왕이 낮고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
안시는 익숙하게 그의 품을 파고들고, 그는 그런 안시의 얼굴 위로 더욱 깊이 목을 숙이고 무어라고 몇마디 속삭였다. 안시는 그 말을 듣더니 깜짝, 차마 눈동자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지 못하고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장계 다 읽었다. 오늘치 보고서는 끝났어.
2.
"낙빈은, 잠들었나."
깊숙한 안채의 방, 시비 하나가 얇은 문 앞을 지킨다. 왕이 낮은 음성으로 질문하자 비복은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왕을 위해 문을 연다.
과연 문을 열자 안시는 하얀 침의를 입은채 잠드는 대신 단촐한 침상에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부푼 배를 안고 여자는 동그마니 몸을 말아 소리내지 않고 울고 있었다.
마차가 떠날 때, 그녀는 울지 않았다. 우리가 처음 닿았던 날에 네가 그랬지. 너를 울게하는건 신 뿐이었다고. 그녀가 울지 않는 것을 보고, 그는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길 또한 신이 마련하신 길인가보다. 내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그녀를 알게 하고, 그녀를 안게 하였던 것처럼 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려나보다. 그리곤 헤어졌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눈 앞에서 울고 있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뿐이다.
"또 울고 있었구나."
한 발, 두 발 다가서며 그는 말했다. 왕은 안시 옆에 앉았다. 아이를 뱄는데도 안시는 여전히 작았다. 애가 애를 가졌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마치 배만 솟아올라 그것을 보고서만이 산부임을 알게 했다. 이한은 한 손은 안시의 어깨에, 한 손은 배에 놓았다.
"네가 어미니 아이가 너를 닮을텐데, 정말 얼마나 울보일지.”
그리고 얼마나…
“얼마나 사랑스러울지.”
사랑스럽겠지. 열 사람이 한번에 달려들어 사랑해도 모자를만큼.
아이는 어미를 닮아…
어머니를…
왕야, 하니 그애가… 왕야를…
울지마, 행복했던 때를 생각하자.
이한은 안시의 머리를 알아 품에 끌어당겼다.
"너를 사랑한다 안시."
알고 있지? 이런 말 할 수 있는건 단지 너뿐이야.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너는 울어줄 거잖아.
그는 더이상 신경쓰지 않는, 오해와 오욕 속에 죽어가더라도 그녀는 그런 그를 사랑해줄 것이다. 사랑받고, 사랑하며 자란 그녀가, 그를. 안시의 눈물이 가슴팍 어디께쯤을 따라 흐르고, 어깨를 좀 더 끌어올려 깊이 안자 목을 적신다. 눈물을 닦아주는건 마음을 주는 행동이다. 그래서 안시. 사랑한다. 그는 주문을 외듯이 입술을 움직인다. 사랑하고 있어.
…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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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내새기는_내가_핥아야지.txt
1. 주소의 의미. 안시 울지마...안시 울어줘..
2. 안시가 울 수 있는 존재라 저는 참 기쁩니다. 예전에, 마무리 스토리가 나오기 한참 전에 망상했었어요. 적왕의 마지막, 신하와 후궁들이 모두 모여서 마지막 잔을 듭니다. 그 장면에서, 눈물 흘리는 유일한 사람은 안시였습니다. 울 수 있는건 안시 뿐이었어요. 그리고 스텔라님이 마차 망상도 써주셨으니 이젠 뭐... 사랑한단 말도 안시만의 것.
3. <1>은 안시님의 상큼터지는 망상에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저 앞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안시님이 써주실거에요..나중에...후후. 고마워요 안시님 마치 딸기아이스크림같았어여 ☆
4. 얼굴 감싸는 안시는 그 어느 글에선가 로설에서 남녀가 손잡는 씬만봐도 부끄부끄하던 안시를 떠올리며... 뭐 물론 이젠 안그러겠지만...^^;
5. <1>은 아수궁, <2>는 광주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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